특허기술 가치평가는 왜 필요한가?
지식재산권 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의 가치평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허의 가치평가가 요구되는 영역이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이해당사자 층도 넓어졌다. 특허보유자, 발명가, 은행, 금융분석가, 벤처투자자, 세무당국 등 모두가 특허 등 지식재산권의 가치평가를 필요로 한다. 특허 리포트 전문 기관 IIP타깃(www.iptargets.com)이 발간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지식재산권 가치 평가의 필요성과 어려움을 소개한다. <편집자>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 가치
2005년 1월 P&G(Procter & Gamble Company)는 회계상 장부가치가 28억달러에 불과한 질레트를 570억달러(약57조원)에 인수했다. 질레트의 성장배경을 보면, 볼티모어실컴퍼니(Baltimore Seal Company)에서 무명의 영업사원이던 킹 C 질레트(King Camp Gillette 1855∼1932)가 1901년 설립한 이 회사는 1903년부터 면도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첫해 51개만을 판매했으나1908년에는 100만 개 이상을 판매하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주력사업이던 면도기에서 탈피해 현재의 질레트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전략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경쟁사보다 계속적으로 한발 앞선 신제품 출시와 함께 브랜드 가치가 높은 유망기업의 인수를 통한 사업 다각화였다.
매번 신제품 출시때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용을 지출하는 질레트는 1903년 세계 최초의 ‘일회용 면도날 안전면도기’를 개발하고, 1946년 면도날의 포장을 벗길 필요가 없는 `블루 블레이드`란 최초의 교체 면도날을 도입했으며, 1960년에는 면도의 품질과 안전성을 대폭 개선한 실리콘코팅 면도날, 1971년에는 이중날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최초의 면도기, 1997년에는 세계 최초로 3중날 면도기 `마하3`를 출시해 대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질레트의 경영혁신은 오늘날 세계 1억3000만명의 남성들이 매일 아침에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 면도기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면도제품 세계 1위 절대강자로 등극하게 만들었다.
워런 버핏, 질레트 주식투자 9배 차익
‘주식투자의 귀재’워런 버핏 회장은 면도기 및 전지 생산업체 질레트의 주식이 9배 가까이 뛰어오르면서‘천리안’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투자보험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인 버핏이 질레트 주식을 매입한 것은 1989년. 당시 6억 달러(약 6180억 원)를 투자해 9600만 주를 사들였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생활용품업체 P&G가 질레트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질레트 주가가 크게 올랐다. P&G는 질레트의 27일 종가(54달러)에 18%의 프리미엄을 얹어 질레트 주식 1주에 자사 주식 0.975주를 교환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버핏 회장이 보유한 질레트 주식은 9360만 주의 P&G 주식으로 바뀌며 27일 주가로 환산할 때 원금의 9배에 가까운 52억 달러(약 5조3560억 원)가 된다. 버핏 회장은 P&G의 질레트 인수를 “꿈의 결합”이라며 환영했다. 그는 “(질레트에) 투자한 이후 계속 행복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행복하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나 질레트 주식을 현금화하는 대신 “P&G 주식 1억 주를 확보하기 위해 추가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에 이어 세계 2위의 재산가인 버핏 회장은 기업의 가치를 중시하는 투자법으로 유명하다.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1990년대 말 그는 이른바 ‘닷컴 주식’은 거품이라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량기업에 대한 선별투자로 유명한 워렌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우 기업평가 능력 등 무형자산의 가치가 100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이 기업의 시장가치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2년 미국에서 유형자산이 기업의 시장가치에 기여하는 부분은 단지 25%에 불과했는데, 이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포함하는 무형자산이 나머지 75%를 차지했다는 점을 의미한다(Kaplan and Norton, 2004). 이 수치는 1982년에 무형자산이 회사의 시장가치에 기여하는 것으로 조사된 40%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이다.
인용도가 높은 특허(특허 1개당 20번 이상의 인용)를 보유한 기업들은, R&D 수준이나 보유 지식재산에서는 비슷하나 인용도 면에서 중앙값 정도인 특허를 가진 기업들에 비해 50% 더 높은 시장 가치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특허에 대한 인용 분석은 잠재적인 라이선시를 찾아내고 특허 침해사례를 모니터링하는 데 유용하다. 그 이유는 특허를 인용하는 당사자는 그 특허를 기반으로 발명을 구성하고, 동일한 분야에서 그 발명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 가치평가의 어려움
대표적인 지식재산권(IP)인 특허기술은 특허법상 재산 가치를 인정받는다. 즉, 특허기술 사용으로 인한 이익을 독점할 수 있고, 타인에게 그 권리를 이전할 수도 있으며, 타인이 권리를 침해했을 경우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특허기술의 재산적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게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재산 가치를 측정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허기술과 관련해서는 애초에 시장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가 힘들다. 사실상 동일한 특허기술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law of indifference)’을 적용하기가 힘들다. 일반적인 상품시장에 비해 불완전 경쟁시장에 속하므로 수요, 공급에 따른 시장가격 결정 메커니즘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제품과 비교해 볼 때 거래실적이 많지 않고 거래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는 경우도 거의 없어 기존 거래를 참고하기도 쉽지 않다. 직접적으로 가치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특허기술은 그것이 적용될 제품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가치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은 변화와 유동성이 매우 크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과 시장의 변화가 급격히 진행돼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은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언제 쓸모없는 기술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만큼 지식재산은 위험성이 크고, 그 때문에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기가 힘들다.
기술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처럼 기술의 실시(사용)에 대한 대가를 측정하는 경우엔 더더욱 복잡하다. 기술 자체의 경제적 가치평가조차도 객관적인 방법이 확립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라이선스 관련 로열티를 결정하는 보편적 방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특허권은 기술 분야, 권리 범위, 원천기술인지의 여부, 유사특허의 존부, 회피설계의 가부, 상용화 단계 등에 의해 가치의 차이가 매우 크다. 이러한 이유로 특허권에 대한 거래 가격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계산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주로 당사자들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기술 사업성 평가의 필요성
특허법에서는 심사관은 특허출원에 대해 특허법 제62조에 규정한 거절이유가 없는 경우에 특허결정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허출원의 주요 거절이유, 즉 (특허의 주요 등록요건)은 다음과 같다. 개인이 발명한 아이디어 또는 기술을 권리화시켜 특허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신규성, 진보성 등 특허 등록(취득)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특허 등록요건은 특허권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으로 특허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기술의 사업적인 측면 또는 경제적 측면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특허 받은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를 위해서는 별도의 사업타당성 평가 또는 사업가치 평가가 필요하다.
기술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고 기술 실시(사용)에 대한 대가를 결정하는 방식에는 원가접근법, 시장접근법, 현금흐름할인(discounted cash flow)에 의한 이익접근법, 몬테카를로법(Monte Carlo simulation), 블랙-숄즈 옵션 가치평가 모형(Black-Scholes option valuation methods) 등 다양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제각기 장단점과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특히 기술 대가 결정방식은 수학적으로 정교하고 세밀한 방법일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히려 특허권의 가치평가실무에서는 주로 법원에서 특허권의 침해 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합리적 로열티접근법 및 경험칙(rules of thumb) 등이 유효할 때가 많다.
지식재산권 가치평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산업계 실무에서 기술의 구입, 판매, 라이선싱(licensing)을 위한 거래 가격 산정, 현물출자, 금융(대출 담보 설정 및 증권화), 세무(기술의 기증, 처분, 상각을 위한 세무 계획 수립 및 세금 납부), 전략(기업의 가치 증진, 기술 상품화, 분사(spin-off), 기타 장기 전략적 경영계획 수립), 청산(기업의 파산 또는 구조조정에 따른 자산 평가, 채무 상환 계획 수립), 소송(특허권 침해, 채무불이행, 기타 재산 분쟁관련의 법적 소송) 등에서 다양한 목적에 따라 지식재산권 가치평가가 요구된다.
지식재산권 가치평가의 활용 및 관점
특허 가치평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법률에 따라 이루어지고 다른 하나는 법률에 구애받지 않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수행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특허 가치평가는 특허의 미래 경제적 이익을 추정해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특허의 사업 활용)와 권리침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추정하는 경우(특허침해 손해배상액 산정: 과거의 경제적 이익 추정)로 구분할 수 있다.